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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론/사진론

사진의 역사

by EVAN 201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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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역사

1. 사진(寫眞, Photography)의 어원
Photograph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 이라는 phos"그린다"grapose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의 寫眞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데 사물을 "베낀다", "박아낸다", "찍어낸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再現)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사진의 발명
사진은 어떤 사물을 있는 표현하고 싶고 사라져 버리는 영상을 정지시키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39년 드디어 프랑스의 다게르에 의해서 그 꿈이 실현되었다.
현대 카메라의 효시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진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할 수 있는데, 바늘구멍을 통하여 들어온 광선이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이 이미 BC 3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발견되었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화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 종이를 넣어 사용되었으며, 구멍에 렌즈를 끼워 이미지를 개선하였으며 그 크기도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는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 화학약품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방법이 다양하게 연구되어 실패를 거듭한 끝에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인 니엡스에 의해 초기 단계의 사진술이 발명되었으며 "태양으로 그림 그리기" 라는 뜻의 "헬리오그라프(heliograph)"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을 183917일 프랑스과학 아카데미에서 세상에 공포하게 되었다.
다게레오타입은 구리판에 은을 도금하여 옥소라는 화학 약품과 결합하여 감광판을 만들어 카메라 옵스큐라에 넣어 빛을 쪼인 후 티오황산나트륨으로 정착하여 정밀 묘사한 초상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1840년 탈보트에 의해 금속이 아닌 종이에 질산은을 이용하여 오늘날 같은 네가티브 필름을 만들어 밀착 인화로 많은 양을 똑같이 복사할 수 있는 칼로타입(calotype)이 만들어졌다.

1851년 유리판 위에 네가티브 필름을 만들어 선명도와 복제성이 좋고 노광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진 콜로디온 습판법(collodion wet-plate)이 발명되어 초상사진, 풍경사진, 전쟁사진 등이 유행되었고 신문에 사진이 사용되었다.

1880년대에 들어와 투명하고 유연한 플라스틱의 롤필름(roll film)이 발명되어 대중이 사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888년 영국의 이스트먼은 가벼고 다루기 쉬운 코닥1호 카메라를 개발되었으며, 1/25초의 노광과 100여장의 찍을 수 있는 필름이 들어 있었다.

1925년 오늘날과 같은 35카메라 모양을 갖춘 카메라는 독일의 라이츠박사가 라이츠(Leitz Leica) 1호 카메라가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아마추어, 프로 모두에 사랑을 받고 있다.  
  
3, 필름의 발전
초기에는 필름과 인화지가 같은 다게레오 타입과 밀착인화를 할 수 있는 칼로타입(calotype),콜로디온 습판법(collodion wet-plate)에서 지금과 비슷한 흑백 롤필름과 인화지가 만들어져 사진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으나 자연의 색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칼러사진은 1869년에 프랑스인 호런과 크로스에의 감색법(필름면에 빨강, 초록, 파랑색의 염료를 입힌 후 화학 약품으로 필요한 색만 남기고 없애는 방법)에 의한 칼러사진을 만들 수 있는 이론을 발표된 후 1935년 만네스와 고도스키에 의해 코다크롬이라는 칼라필름을 상용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많은 제조회사 만들어져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필름이 나왔으며,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까지 나와 필름이 필요 없게 되었다.

4. 사진의 발달과정

. 초기의 인물사진
사진이 발명된 직후 인물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당시 몇몇 사진가에 의해 유명인사의 인물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당시에는 장시간 노출을 주어야 가능하므로 의자에 몸을 고정시키기 위해 몸을 묶기도 하였다.
초기의 사진은 인물사진을 중심으로 상업적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 전쟁 사진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는 전쟁 상황을 사진이 없는 신문이나 군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어야했다. 그러나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는 전쟁의 실제 상황을 리얼하게 신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1850년대의 영국 크리미아전쟁과 1860년대의 미국 남북전쟁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전쟁사진은 신문에 있어서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으나 상업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 초기의 관광사진
19세기 증기기기관차의 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할 수 있었으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은 그림이나 말로 전해 들어야 하나 그것은 실제보다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데 충분하여 탐험가들과 동행하여 풍경사진, 고대 문명 발상지 사진, 외국의 풍물사진 등을 촬영하였다. 그러나 사진가는 무거운 사진기와 약품들을 운반해야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 기록으로서의 사진
초창기사진의 가장 훌륭한 특징은 사실적이고 정확한 디테일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촬영 당시에 있던 모든 것은 반드시 찍히므로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믿음을 심어 주어 오늘날 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1920년대 초에 소형 사진기의 출현으로 새로운 의식을 가진 많은 사진가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 사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 19세기 예술로서의 사진
사진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1870년대의 사진은 회화의 형식을 사진에 적용하여 인물, 정물, 풍경, 누드 등이 사진의 소재가 되었으나, 사진은 회화의 일부로 여겨져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꾸준히 회화의 모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사진가들이 늘어났다.

. 회화주의 사진과 사진 분리파 운동
사진은 예술인가? 20세기의 전환점에서 사진가들은 이 물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회화를 모방하는 회화주의 사진가와 예술사진가들은 평범한 스냅사진과 특정목적을 갖는 그들의 사진과는 차별하여 다루어지길 바랐다. 서서히 이젠 사진가로써 위상을 높여 보려는 시도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시기는 회화주의사진가는 빛과 분위기, 감정을 중요시하는 인상파(마네, 모네)의 영향으로 안개 낀 풍경, 부드러운 분위기의 도시풍경들을 좋아했으며, 또 다른 그룹에서는 있는 그대로 삶의 모습을 담는 스트레이트사진으로 사실주의사진이 태동하는 시기였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스티글리츠(A. Stieglitz) 케세비어(G. Kasebier)등이 있다.

. 사실주의 사진과 새로운 비젼의 추구
1950년대 이전까지는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스트레이트사진(Straight photography)
으로 회화와 결별은 선언하고 사진으로서의 미학적 담론들을 완성시킨 시기이다. 신문, 사진잡지 등을 통한 포토저널리즘이 완성되었다. 만레이, 모홀리나기 같은 사진가는 포토그램, 포토몽타쥬, 반전현상, 왜곡, 다중노출 등을 개발하여 표현의 영역을 넓혀 갔다.

. 1950년대 이후 예술로서의 사진
예술의 한 분야로 완전히 인정되어 대학에서 사진을 교과과정에 들어가 1960년대에는 대학에학과가 개설되고 회화만 취급하던 화랑에 사진도 진출하게 되고 사진전문화랑도 문을 열었다.
사실주의사진과 함께 추상사진, 순수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사진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 해당 글은 http://www.moonsw.com 포토그래퍼 문상욱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는 글이며, 무단 게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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